[인상주의] 드가 '무대 위의 무희'
드가(1834~1917)를 따라 발레 공연이 한창인 무대로 한번 가 볼까요?
가장 먼 배경에는 바다나 산처럼 보이는 멋진 무대장치가 펼쳐져 있네요. 그리고 무희들과 남자 선생님이 커튼 자락에 몸을 가리고 내다보고 있는 모습은 그림의 중간 배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발레복을 입고 우아하고 커다란 동작으로 관객의 시선을 끌고 있는 무희가 이 공연의 주인공입니다. 참 멋진 춤이군요.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점과 화면의 중앙을 비워두는 구도는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의 관심을 끌었던 일본 목판화의 영향입니다.
드가를 포함한 인상주의 화가들은 유럽이 일본에서 도자기 등을 수입할 때 물건을 싸던 포장지의 새로운 그림 형식에 주목했습니다. 지금껏 본 적이 없는 특이한 구도와 선명한 색채, 그리고 필요에 따라 과감하게 단순화하거나 생략한 기법은 가히 충격적이었지요. 섬세하고 깨끗한 선도 서양의 그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한 느낌이었어요.
우키요에라 불리는 일본판화로 제작된 이 포장지 그림을 화가들은 수집하고 베껴서 그리기도 했습니다.
다른 그림을 베껴 그리는 일을 모사라고 하는데 좋아하는 그림을 그대로 보고 그리면서 그 기법과 색채 사용 등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아래에서 위로 비추는 조명은 주인공을 더욱 신비한 분위기로 만들고 있네요. 주인공 이외의 다른 배경들은 자유롭고 거친 터치로 그려져 대각선으로 내려오는 구도와 함께 멀리 뒤로 물러나 있는 느낌을 줍니다.
이 작품은 파스텔 화입니다. 곤충의 날개처럼 얇고 투명한 색색의 발레복을 표현하기에는 흘러내리는 수채화나 끈적한 유화물감보다 파스텔이 훨씬 효과적이었겠지요. 파스텔로 이렇게 훌륭한 묘사를 하기로는 아마 드가를 능가하는 화가가 없을 것입니다.
드가는 무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다란 자리에 앉아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연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무희의 긴팔이 공간을 가로저을 때 나타나는 운동감과 팔과 다리가 만들어내는 곡선, 조명이 움직일 때마다 하늘거리는 발레복 같은 것들을 관찰하기에 여념이 없겠지요.
드가는 발레리나의 화가로 불립니다. 대부분의 인상파 화가들이 햇살 아래 반짝이는 자연 풍경에 관심을 가질 때 드가는 거의 실내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당연히 공연장이나 연습실을 찾아다니며 엄청나게 많은 스케치를 했겠지요.
무대 위의 무희처럼 춤을 추고 있는 예쁜 모습을 그린 작품도 많지만 무희들이 무대 바깥에서 하품을 하거나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등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혼자서 무심코 하는 행동들을 재빨리 크로키하고 그림으로 옮기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무희는 지금처럼 완벽한 예술가로 칭송받는 직업이 아니어서 그런 허점을 쉽게 내보인 것일까요.
드가는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에도 쉴 새 없이 새로운 그림을 구상하면서 메모를 했습니다.
색채에 대한 생각까지도 꼼꼼하게 기록한 이유는 모든 그림은 과학적 관찰의 결과이며 인식의 산물이라는 생각으로 즉흥적인 감정 표현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술은 끊임없는 노력의 결실이지 어떤 천재적 영감의 표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20세가 되던 해 드가는 하던 법률 공부를 그만두고 화가의 길로 뛰어들었습니다. 그가 출세의 지름길을 포기하고 화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루브르에서 거장들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그림 공부에 열중하다가 우연히 마네를 만나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됩니다.
많은 천재 화가들이 그랬듯이 드가도 미술 애호가들에게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신뢰하며 열심히 그림을 그렸으므로 누구보다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긴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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