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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보는 서양미술사

[로코코] 와토 '시테르 섬으로의 출범'

[로코코] 와토 '시테르 섬으로의 출범'

 

와토 <시테르 섬으로의 출범>, 1717, 캔버스에 유채, 129x194cm 루브르박물관, 파리

시테르 섬으로의 출범은 와토가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 작품으로, 루벤스의 '사랑의 정원'이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그렸다고 합니다. 부드러운 곡선이 넘쳐나는 화면 구성과 밝은 색채, 풍부한 감성 등 화토 특유의 기법은 물론 18세기 로코코 미술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크레타 섬 북서쪽에 위치한 시테리 섬은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가 살았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사랑하는 젊은 남녀가 꿈꾸는 환상의 섬입니다. 화려하게 치장한 세련된 젊은 남녀들이 비너스 여신을 섬기는 성전이 있는 시테르 섬을 향해 떠나거나 돌아오고 순례자들은 산과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여신상과 큐피드에 둘러싸여 사랑과 쾌락의 술에 젖어 있습니다. 어수선함 때문인지 낙원에서의 이런 유희가 끝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서글픈 암시가 느껴지는군요.

와토는 사랑과 쾌락이라는 주제를 통해 이상향을 향한 꿈이 본질적으로 덧없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꿈은 실현되지 않을 때 더욱 아름답고 간절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로코코는 바로크 미술 이후 17세기에서 18세기 후반에 걸쳐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유행한 미술 양식입니다.

로코코라는 말은 조개껍데기로 만든 세공품 모양을 가리키는 프랑스어 로카이유에서 유래했지요.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 장식품이나 공예품 등을 표현하는 말로 쓰이다가 지금은 그 시대의 프랑스 미술, 나아가서는 유럽 미술 전체를 의미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공예품이 특히 발달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로코코는 바로 앞 시대에 유행했던 바로크 미술 양식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바로크 미술의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바로크가 넘치는 의욕으로 거칠고 남성적인 면을 과시했다면 로코코는 그것을 더욱 세련되고 화려하게 꾸며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귀족계급이 추구한 사치스럽고 우아한 매력을 담고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부드러운 곡선을 많이 쓰고 색깔은 우아하면서도 담백한 것이 특징이어서, 지금도 사람들은 무게 있고 웅장한 것을 바로크적이라 하고, 섬세하고 여성적인 것을 로코코스럽다고 말한답니다.

 

로코코 시기의 가장 큰 변화는 역사와 종교의 내용을 기록하고 궁전과 교회를 장식하는 역할을 담당하던 미술작품이 귀족과 개인 소유의 성 내부를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가 여러 차례의 전쟁과 종교적 혼란을 겪으면서 시민들이 왕실과 교회에 의존하던 정신세계를 떠나 일상생활과 개인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귀족들마저도 왕실에 충성하는 대신 자신의 저택을 치장하고 경쟁하는 것에 열을 올렸다는군요.

귀족 부인들이 담소를 나누고 그림 취미를 공유하면서 모이는 장소인 살롱에서는 전시회가 열려 화가와 관람객과의 교류가 생겼고 그림의 가치를 평가하는 평론가도 탄생했습니다.

 

'시테르 섬으로의 출범'이 다소 가벼운 예술이라는 비난을 받긴 했지만 다행인 것은 보수적인 프랑스 아카데미 기관이 작품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로코코 회화의 우아하고 향기로운 느낌을 미술사에서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당시는 아카데미가 인정하지 않는 작품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프랑스혁명과 함께 종교적인 분위기가 되살아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다니는 미술 애호가들의 취향이 다시 복고풍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러자 로코코 양식은 고전양식에 비해 경박하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일까 하는 고민이 거듭되는 만큼 지금의 우리는 또 하나의 새로운 스타일을 만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