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코] 샤르댕 '구리 냄비와 세 개의 달걀'
장 바티스트 샤르댕(1699~1779)은 와토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지만 전혀 다른 성격의 그림을 그린 화가입니다.
그는 가난한 서민들의 생활 속의 물건들을 소재로 삼아 정물화를 그린 첫 화가이기도 합니다.
낡고 초라한 주전자와 빵과 물잔 같은 일상용품들이 그의 그림 안에서는 무엇보다 진귀한 보물처럼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맛있는 요리를 하는 냄비와 양념통, 달걀 등 살아가는 데 하루라도 없으면 안 되는 생활도구들이 주인공이 됐습니다.
샤르댕은 1699년 프랑스에서 가구를 만드는 장인의 아들로 태어나 어렵게 화가가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화가들이 왕실과 귀족들이 주문한 초상화나 종교화를 그리던 시기에 그는 서민 가정의 일상생활이나 어린이들의 모습, 그리고 사소한 생활 도구를 소재로 한 정물을 즐겨 그렸습니다. 아직은 정물화가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던 시기에 말이죠. 그래서 18세기 최고의 정물화가로 불립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시장에서의 귀로', '요리하는 여인', '팽이를 들고 있는 아이' 등이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꼼꼼한 솜씨와 세밀한 관찰력으로 정물 하나하나에 정성을 듬뿍 쏟았습니다.
그리고 잔잔하고 느린 붓질로 물감을 두껍게 칠해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깊고 은은하게 만들었어요.
움직이지 않지만 사용하는 사람의 손때가 잔뜩 묻은 그릇들은 그림 안에서 생명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화가가 마치 가족을 대하듯 따뜻한 마음으로 도구를 대했기 때문일 거예요.
냄비 손잡이를 꼭짓점으로 해서 크게 삼각형을 그리면 정물들이 그 삼각형 안에 놓이게 되지요.
이것을 삼각형 구도라고 합니다.
구도는 정물화에서 아주 중요한 것으로 정물이 놓인 위치가 나타내는 분위기를 말합니다. 삼각형 구도는 아래가 넓고 평평해서 감상하는 사람에게 매우 안정감을 주어 정물화의 구도로 가장 많이 쓰입니다.
샤르댕의 정물화는 거창한 내용을 그리지 않아도 훌륭한 그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쉬운 단어들이 아름다운 시가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멋지게 보이려고 꾸미지도 않았고, 애써 잘 그리려고 과장하지도 않았어요.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생활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화가는 따스한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금지된 일이지만, 그림을 만지면 저 물건을 사용했던 사람들의 따스한 온기가 전해 올 것 같습니다.
프랑스어 'nature morte' 에서 알 수 있듯이 정물은 생명이 없는 자연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스스로는 움직일 수 없는 사물들을 그린 그림을 정물화라고 합니다. 고대 폼페이 벽화나 로마의 모자이크에서도 훌륭한 정물화를 발견할 수 있지만 17세기가 되어서야 사회구조와 연간을 맺으면서 본격적인 작품이 나타나게 됩니다.
정물화의 가장 큰 매력은 생활 가까이에 있는 사물의 이미지를 그림에서 발견할 때 느끼는 공감과 만족입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사치스러운 세공품과 흔히 볼 수 없는 진귀한 물건들이 소재로 등장해서 물체가 가진 아름다움과 의미로 새로운 재미를 주는 정물화도 많이 그려졌습니다.
특히 샤르댕은 작은 캔버스에 하나의 소우주를 느끼게 하는 질서와 균형을 통해 진정성 가득한 정물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물화의 탄생
정물화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물을 배열해 놓고 그리는 그림으로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거부감 없이 쉽게 이해하며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최고의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어원은 네덜란드어에서 유래했으며 영어로는 'still life'라고 합니다.
'움직이지 않는 생명'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요. 단순히 사물을 포착해서 그리다가 움직임이 없는 자연으로 까지 소재가 확대되었습니다. 고대의 폼페이 벽화나 로마의 모자이크에서도 경탄할 만환 수준을 찾아볼 수 있으나, 독립적인 정물화로 보기는 어려우며, 인간과 신의 관계에 집중했던 중세 때는 발전할 수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최초의 정물화는 이탈리아의 화가 자코포 데 바르바리가 1504년에 그린 작품을 꼽습니다. 정물화가 미술사에 독자적인 장르로 기록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닙니다.
정물은 고대 로마 때의 벽화에서 부분적으로 그려졌을 뿐 중세시대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14세기 말경에 약간 그려졌으며, 16세기에 죽은 새와 물고기가 단독으로 그려졌으나 17세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에서는 세밀 묘사의 대상이 되어 독립된 화제로 확립되게 됩니다.
종교화나 인물화 등의 배경으로 사용되다가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가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네덜란드 화가들은 정물화를 독자적으로 발전시켰고, 양적으로도 풍성하게 생산했습니다.
18세기에 들어와 프랑스의 샤르댕은 정물에 질서를 부여하여 하나의 소우주를 형성하면서 정물화가 회화성을 갖추고 다른 장르와 동등한 위상을 가지는 것에 공헌합니다. 샤르댕은 섬세한 색채로 친밀한 효과를 높였으며, 세잔느와 마티스, 보나르 등에 이르러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비구상 회화가 등장하기까지 프랑스는 정물화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고,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작가들 대부분이 정물화를 그렸습니다.
정물화는 단순한 외부 자연물의 배열이 아니라 사물의 형태와 조합의 재발견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가장 큰 무기는 일상성에 대한 공감과 만족이며, 질서와 완결성을 통해 진정한 미적 쾌감을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순수미술의 한 장르를 구성하면서도 학교 교육 과정에서 적극 활용됨으로써 원근법과 명암법, 형태와 색채의 훈련 및 사물의 배치와 구성력을 증진시켰으며, 객관적 시각과 인식을 확립시켜서 근대성의 획득에 일조한대에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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